넉살-Rapper
- Editer-Lyuko,SloW
- 2016년 2월 27일
- 8분 분량
"발악을 하되, 노동과 노력의 차이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VismajorCompany 소속 래퍼 넉살이다. 정규앨범 [작은 것들의 신]이 2월 4일에 나왔다.
넉살의 의미는 무엇인가?
-별것 없고, 다들 아시는 뜻이다. ‘넉살 좋다’ 할때의 그 의미이다. 고등학교 때 지은 이름인데, 아직 바꾸지 않고 쓰고 있다.
넉 언니라는 수식어가 있다. 머리를 기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딱히 없다. 전역하고 나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더 도어스(The Doors)의 짐 모리슨(Jim Morrison) 팬이기도 해서 기르기 시작했다.

힙합씬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이 Future heaven의 [sine qua non]인가?
-23살 때 듀오로 첫 EP를 냈다. 랩과 프로듀싱을 하는 애니마토(Animato)형이 전곡을 맡으면서 두 장의 EP를 낸 것이 처음이다. 그리고 리드메카(RHYDMEKA) 크루를 같이 만들면서 처음 시작했다.

믹스테잎 [Militape]을 낸 후 자신의 곡보다는 참여 곡이 많다.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작업한 것이 [Militape]이다. ([Militape]의 Mili 뜻은 Military의 의미도 있고, Milionaire의 의미도 있다.) 애니마토(Animato)형이 도움을 주어서 군대 휴가를 나올 때마다 작업했다. 그 후 딱히 싱글 계획은 없어서 그것으로 활동하는 와중에 여러 뮤지션들이 공연을 보고 많은 도움을 청해서 피처링 작업을 많이 했다.

이번 년에 처음으로 넉살이란 이름으로 된 [작은 것들의 신]이란 정규 앨범이 나왔다.
-[작은 것들의 신]은 인도 여성작가인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의 책에서 모티브를 받았고, 제목에서 큰 메타포를 따왔다. 책의 내용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책의 내용은 인도가 힌두교였는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천주교 유입이 되었다. 그 책 주인공들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그리고 식민지배가 끝난 후 다시 인도를 지배하였던 힌두교가 득세하고 다시 인도는 힌두교가 국가의 종교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주인공들은 천주교를 믿으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이 영국 식민지배를 받았을 때의 천주교를 믿던 사람들을 쉬쉬하면서 소외시켰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를 회상하면서 ‘그렇다면 이 커다란 힌두교를 지켜주는 신은 있는데 우리 같이 천주교를 믿는 적은 사람들을 지켜주는 신은 인도라는 땅 안에서 어디 있는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여기서 종교적인 내용을 담지 않고, 세상을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에 비해서 조금은 떨어지거나, 아무리 열심히해도 잘 안되거나 소위 말하는 소시민? 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딱딱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살았던 일들, 비정규직이나 알바같은 내용을 대입해 담고 있다. 정규직이 아니거나, 집이 금수저가 아니거나, 어렵게 살고 있거나,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서 나온 앨범이다. 그래서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앨범은 이런 작은 것들. 소위 말하는 나를 포함한 소소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한다는 뜻에서 짓게 된 앨범의 제목이다.
[Nuckle flow]를 들어보면 ‘the god of small things’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부터 앨범을 준비한 것인가?
-이 앨범의 이름이 처음 나온 것은 꽤 오래되었다. 3년전? 4년전? 부터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이름을 걸고 앨범을 낸다면은 [작은 것들의 신]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VMC에 합류하고 나서 실질적으로 실체화가 되었다.
가사들을 보면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가사들이 많다. 어떠한 생각을 하고 가사를 쓰는가?
-(웃음) 가사를 쓸 때 별생각이 없다. 다른 인터뷰에서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가사 쓸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다른 직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힙합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에 모든 시스템과 알고리즘이 힙합이라는 타이틀로 감싸고 있기 때문에 가사를 쓸 때나 주제를 생각할 때나 특별히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일상적인 것에서 좋은 주제가 떠오르면 그것에 대해서 크게 확장한다든지, 아니면 아주 좋은 한 구절이 딱 나오면 그것을 대주제로 확장한다든지, 그런 식이다. 자유롭게 떠오르는 데로 쓰는 스타일이다.
랩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
-일단은 좋아야 한다. 다른 것도 구구절절 많지만, 사람들이 요즘에 음식을 먹는 순간 ‘이건 맛있다. 맛없다.’가 딱 나오는데, 음악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듣는 순간 “이거 뭔가있다. 좋다.”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설명하자면 가사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팔지 않아’, ‘밥값’ 상반성을 가지고 있는 두 개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둔 것인가?
-‘팔지 않아’가 이름만 ‘팔지 않아’이지 곡에서 내포하는 바는 우리가 자신을 더 믿고 서포터해줄 때 더 빛이난다는 내용이다. 가사를 보면 ’내 영혼을 싸구려 팔지 않아. 베니스의 상인은 후한 값을 제시했지만 내 영혼의 옆구리 1도 줄 일없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서른이 돼서야 첫 앨범을 낼 수 있었고, 모든 시간이 이렇게 지나왔을 때, 그때도 ‘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 이 세상이 거부하고 돈을 못 벌지언정 분명 어느 순간 더 큰돈을 벌겠다고 나 자신의 서포터가 있는 한 제값을 받고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팔지 않아’를 쓴 것이다. 상반성이라고 하기에는 ‘밥값’도 다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밥값’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모습들을 소개하면서, 그 세상의 차가운 모습들을 보여주려 했다. ‘밥값’은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1절에서는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해왔을 때 보았던 모습들(직장인들이 밥을 먹고 한 시간 동안 쉬면서 담배와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너무 짧게 생각하는 모습, 잠깐 밥 먹고 들어와서 낮잠 10분을 자고 또 일어나서 6시, 9시까지 일을 하는 모습)이 자신을 자괴감에 빠뜨리고 힘들게 하지만 사실 그 모습은 반드시 응원받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2절에서 그렇게 너희는 일하고, 나는 다리를 건너서 공연을 하러 가고 이런 모습이 다르지 않고 충분히 응원받을만 하다는 내용이다.
[작은 것들의 신]에 수록된 곡 중에 ‘Show Me The Money’ 에 대한 얘기가 담긴 ‘One M.I.C’ 라는 곡이 있다.
-내가 ‘Show Me The Money 2’ 에 나가서 탈락했었다. 1절에서는 내 이야기가 어느 정도 깔렸다. 믹스테잎을 내고 친구의 권유로 ‘Show Me The Money’에 나가서 있던 이야기를 쓰고, 3절에는 그 이후에 소위 말하는 꼰대같은 뮤지션이 음악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더 집중하는 그들이 변화를 하는 트랙이다. 1절까지는 내 모습을 많이 따온 것이고, 2절에서는 어느 정도 내 이야기 그리고 이번에 ‘Show Me The Money 4’에서 스눕독(Snoop Dogg)이 나왔을 때의 이야기들에 픽션이 가미되어서, 3절까지 쭉 픽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특정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까지 섞어서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다.
‘Show Me The Money 2’의 출연하였다. 출연자 입장에서와 시청자 입장에서 ‘Show Me The Money’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출연하면 잘되고 좋고 여러 가지가 많이 따라오고, 좋은 경험이었고, 힘들고, 솔직히 미디어가 경험의 측면을 없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자기 자신이 어떤 음악을 잘하는지 찾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오랫동안 해왔던 1세대 래퍼 형들 가리온이나 유명한 래퍼들 지금의 도끼(Dok2), 더 콰이엇(The Quiett)같은 분들. 다 각자의 시간을 통해서 단련을 해왔고, 수많은 앨범과 시행착오를 겪어서 최소 5년에서 10년, 많게는 20년까지 경험을 쌓아서 어떤 음악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었다. 예를 들면 R.P.G 게임처럼 몬스터를 잡고 레벨을 올려서 아이템이 축적되어야 금수저 라인에 오를 수 있었는데, ‘Show Me The Money’ 는 그 시간의 개념을 없앤, 말 그대로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같은 것이다. 그 순간의 경험과 축적이 없어지고, 그 뮤지션이 많은 경험이 없이 큰 명예와 이런 것들을 받는 시스템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를 하였을 때는 힘들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재미있는 쇼이다. 스눕독(Snoop Dogg)같은 경우에는 보았으면 알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쇼이니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현재의 힙합씬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것 같다. 군대를 제외하고 랩 음악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7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우선은 월드와이드 해졌고, 잊지마(It G Ma) 같은 경우는 재밌는 월드와이드를 만든 사건이었고, 세상이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음악적으로 실력 있는 친구들이 부각될 수 있는 면들도 드러나고, 그것에 따라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었고, 거품들도 커졌다. 뭐 거품이 커진다는 것은 시장이 커진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또 반대로 시장의 반(反)하는 음악들이 커지고, 어찌 보면 굉장히 과도기의 흐름인 것 같다. 가장 재미있고, 삼국지처럼 누가 패권을 잡을지,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는데, 지금은 그 혼돈의 카오스 속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사례들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사례이다. 예를 들어 Hi-Lite나 A.O.M.G가 CJ같은 대형 자본에서 투자를 받고, 예전에 언더그라운드의 뮤지션이 실제로 음원 시장에 SM이나 YG같은 대규모 기획사 사이에서 음원차트 상단 순위에 올라와 있고, 인디 음악과 이런 자본적인 저울이 많이 무너지고 막 유입이 되고 복잡하게 섞여 있다. 소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의 관계가 무너진 것 같다. 굉장히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나도 그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기때문에, 지금은 카오스 같은 상황이 아닌가 싶다.
힙합이란 장르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누나가 3명인데, 누나들이 힙합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왔고,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이 힙합이고, 중학교 때 들어가고 나서는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많지 않나? 그러면서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 친구들 집에 놀러 갔는데 외국 힙합 앨범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의 형이 Mnet 프로그램 중 ‘HipHop The Vibe’에 출연하였다. ‘HipHop The Vibe’는 ‘Show Me The Money’의 전신 같은 것인데, 조금 더 깊고 언더그라운더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가고 그때 힙합에 대해 제대로 들었던 것 같고, 힙합은 장난이 아니구나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 가서 가사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HipHopPlaya’에서 진행하였던 ‘ONE M.I.C’에 참가하였던 기억도 난다.
힙합이란 장르를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는가?
-많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예체능 쪽으로 간다고 하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같은 경우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원하셨지만, 근데 또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데 막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응원도 않고 그런 식으로 대했다. 지금에서야 많이 좋아해 주신다.
G.U.E, 리드메카(RHYDMEKA), 비스메이저(VisMajor Company) 등등 소속되어있는 곳이 많다.
-리드메카(RHYDMEKA)는 20살 때부터 같이 음악을 해왔던 친구들이고, 친목에 관한 의미가 더 크다. G.U.E같은 경우는 처음에 뭉쳤을 때는 ‘음악적 시너지를 많이 내보자.’해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친목을 다지는 곳이다. 각자의 뮤지션들의 개성이 쌔서 각자 잘하고 있다. V.M.C같은 경우는 회사이다. 내가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이고, 계약하고 앨범에 대한 제작과 전폭적인 서포터를 받고 있고, 실질적으로 나를 뮤지션적으로 케어해줄 수 있는 것이 V.M.C이다. 리드메카(RHYDMEKA)와 G.U.E같은 경우는 예전에 음악을 같이 해온 마음 맞던 친구들과 한 크루같은 것이다.
힙플라디오 [황치와 넉치]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재밌게 잘하고 있다. 던밀스(Don Mills)같은 경우는 같은 회사 소속이다. 같이 술을 마실 때 마다 이런류의 장난을 많이 했다. ‘같이 라디오 같은것을 진행을 하자. 방송을 나가자.’ 마리텔에 나갔을 때도 ‘우리가 마리텔을 하자. 나가자.’ 이런 말들을 많이 하면서 놀았었는데, 힙합플레이야에 아는 친구들이 있었고, 라디오를 새로 시작한다고 얘기했었는데 ‘라디오를 할 생각이 있냐?’ 해서 우리는 ‘좋다.’ 해서 하게 되었고, 작년 말부터 녹화를 시작했다.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Commentary2016], 가리온의 [Heritage] 등 앨범이 나오고도 많은 참여 곡이 많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케어하려고 ‘이제 그만해라. 제발.’ 그런 식으로 대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에 주변에 알고 지내는 뮤지션들도 많고, 도움받았던 분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재밌기도 하고,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여서 그런 작업이 많다. 지금 나온 두 가지 이야기를 해보면 [Commentaty2016] 같은 경우에는 작년 말 초 겨울 정도에 얘기가 있었다. [Heritage]같은 경우에도 작년 말 겨울 때쯤에 10월? 11월? 쯤에 들어왔던 것이었다. 가리온 형들같은 경우는 굉장히 리스펙을 했었고, HipHopPlaya는 라디오도 같이 하고 있지만, 의미 큰 사이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쾌히 수락했다.
MBC 마리텔에 넉살 씨가 출연하였다.
-데프콘 형님이 Rhythmer의 편집장 강일권 형님한테 "작년에 나오 앨범 중에 추천 할 만한 앨범이 있냐?"라고 물어보셔서 E-Sense의 [The Anecdote]와 상구 형(Deepflow)의 [양화]를 추천하였다. 그리고 강일권 편집장님이 워낙 V.M.C를 좋아해 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강일권 편집장님의 추천으로 딥플로우(Deepflow)형과 던밀스(Don Mills)와 같이 마리텔에 출연하게 되었다.
음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하나의 큰 맥락만 얘기하자면 따뜻한 음악을 원래 하고 싶었다. [작은 것들의 신]을 보면 대부분 따뜻한 이야기를 쓰지 않고, 뭔가 조금은 차갑고, 웃기더라도 멜랑꼴리한, 우울한 웃음 같은 느낌으로 많이 썼다. 그냥 싸구려 위로 같은 것 말고, 그래도 뭔가 이것을 들었을 때 X같은데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이런 에너지가 진짜 위로라고 생각해서 그런 식으로 가사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조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얘네들이 컸을 때, 당장 지금만 즐기고,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흥만 돋우고 사라지는 음악보다는, 내가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시카고 음악들, Common, Black Star의 Talib Kweli)처럼 따뜻한 음악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인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넉살이 좋다. 이름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많이 듣는 얘기이고, 그냥 넉살이 좋다.
하고자 하는 음악에서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매 순간 모든 사람이 서른쯤이 되면 무엇인가를 알 줄 안다. 20대 초반에는 ‘아 X발 이놈의 방황은 언제 끝이 날까?’ 그런 것들이 금전적인 부분일 수도 있는데, 서른이 되어서는 금전적인 부분은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도 아직도 갈증이 해갈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왜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런 것에 대해서 떳떳하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되면 다른 목표가 생기겠지만, 지금은 그런 질문에 딱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제 두 개의 질문이 남았는데, 오늘 인터뷰는 어떤가?
-질문이 너무 어렵다. (웃음) 아까 사이트를 보고 간단한 코멘터리처럼 간단하게 하는 질문인 줄 알았었는데,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었다. 포괄적인 질문일수록 어떤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항상 응원하고 잘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매거진 이름이 발악매거진이다. 살아오면서 발악한 적은 언제인가?
-앨범을 들어봤으면 알 것이다. 내가 음악으로 돈을 벌기까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재작년부터(28살) 음악을 잘하면 내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28살 이전까지는 끝없는 발악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이라는 것이 금전적인 부분이 크고, 알바를 하면서 음악을 병행해야 하니깐 그것에 대한 괴리감이 컸었는데, 사실 보면 지금도 계속 발악을 하고 있고, 계속 새로운 고민이 있고, 새로운 그런 것들이 나타나는데 28살 때까지 많이 발악했던 것 같다. 앨범 준비하는 2년 동안은 정말 지옥 같았다.
마지막으로 지금 세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멋있게 얘기하고 싶은데, 너무 노땅같고, 뭐 이야기하자면 발악을 하되, 노동과 노력의 차이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에 에너지를 쏟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있어야 한
다. ‘몸이 힘들고 남는 게 없다.’ 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노동이고, ‘오늘 정말 힘들었지만, 뭔가 한 발자국 나간 것 같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중구난방으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한 타입이지만, 그래도 돈이 안 되지만 힙합을 좋아하고 열심히 해서, 요즘은 큰돈은 아니지만 앨범을 낼 수 있었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형체가 있던 없던 노동이 아닌 노력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일이 되든, 내일모레가 되든 무엇인가 되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뿌듯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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